비
비가 온다. 주륵주륵
고딩 때는 비오는 날이 싫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운동화가 흠뻑 젖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 땐 슬리퍼를 신었다. 운동화 속으로 들어온 빗물은 찝찝했지만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며 묻은 빗물은 시원했다.
지금은 백수라서 비오는 날엔 굳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몇 안되는 백수의 장점이다. 비가 오니까, 미세먼지가 많으니까, 너무 추우니까 등의 이유를 붙여서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투덜거리면서 수업 들으러 나가던 그 때가 좋았는데.
망설이다가 어제 결국 병원 예약을 취소했다. 내 과거사를 지나치게 많이 이야기해서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의사샘을 보니까 내 처지랑 너무 비교가 되어서 비참했다. 또 다른 이유는 의사샘이 너무 멋있어서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지만 훈훈하니 잘생긴 사람이 내 얘기 잘 들어주고 많이 힘들었겠네요 이러니까 괜히 의지하게 되더라. 여러번 가면 정말 요상한 마음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차단하고자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예전 병원은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좀 더 있으신 남자 의사샘인데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사무적이다. 조언도 종종 하신다. “몸에 칼이 대고 싶어지면 무서워야 해요.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 생각에 빠질게 아니라 어머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빠져나와야 해요.” 이런식의 조언이다.
어쨌든 두 번 밖에 안 본 의사샘한테 희미한 설렘을 느낀 건 나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고 좀 징그럽다. 경제적 능력에 끌린건가? 내가 그렇게 속물적이었나? 조금 힘들게 살긴 했어도 그런 이유로 호감을 느끼면 안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부모님한테도 친구한테도 의지를 못하니까 그런건가? 의사샘이 훈훈해서? 무슨 이유가 되었건 말도 안되는 이유다. 의사샘이 알면 엄청 불쾌하게 느끼겠지? 진짜 별 생각을 다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예전 의사샘에게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게 나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았다.
감정을 못느꼈으면 좋겠다!!!!으아!!!그러면 괴롭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을텐데. 안 예쁜 나를 보면서 슬퍼할 필요도 없을텐데. 아 근데 감정을 못느낀다면 그나마 사는 낙인 웹툰을 보면서도 아무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지? 으으 모르겠다. 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항상 혼란스럽다 엉엉
으엉 우울햇. 그래도 고파스에서 어떤 분이 올린 이모티콘 보고 넘 웃기고 귀여워서 저장했다.
파항항ꉂꉂ(ᵔᗜᵔ*)
넘 귀여운 이모티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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