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귀에서 삐 소리가 심하게 난다. 약 때문에 이명이 심해진 것이다.
처음 생긴 때는 중학교 2학년 때다. 그 때는 저음으로 웅웅거리는 소리였다. 보통 조용할 때 들리는데 당시 엄청 괴로웠다. 잘 때 정말 고역이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의사가 별 이상 없다고 돌려보냈다. 참아보려고 해도 안되겠어서 결국 가정의학과에 갔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복용했었다. 그 이후로 어찌된 이유에선지 차츰 좋아져서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았다. 하루에 한두번 들리는 정도여서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심해졌다. 원래 창문을 열어 놓으면 외부소음 때문에 이명이 안 들리는데 지금은 전혀 안 통한다. 외부소음을 뚫고 이명이 들린다ㄷㄷ아주 어마어마해...
의사선생님이 심할 때 먹으라고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주셨는데 어제 밤에 한 번 먹어봤다. 오 근데 그거 먹으니까 왜 약쟁이들이 약을 하는지 손톱만큼은 알 것도 같았다. 이명이 줄어드는 건 잘 모르겠는데 아주 그냥 마음이 착 가라앉는게 너무 편안했다. 그리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자고 싶은 마음이 들더니 스르륵 잠들었다. 나는 엄청난 스마트폰 중독자라서 원래 새벽 한두시까지 폰을 보다 자는데 그 약을 먹으니 스마트폰은 던져버리고 눕게 되더라...약 때문인지 기분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찾아보니까 항우울제랑은 다르게 신경안정제는 향정신성약제란다ㄷㄷ검색해보고 좀 놀랐다. 내가 먹은건 의존성이 거의 없는 약인데 알프라졸람? 그런 성분이었다. 어 근데 의존성 없다고 했는데 왜 먹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과장 좀 보태면 매일 처방해주세요 라고 하고 싶은 기분?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그런건가? 하여튼 약에 의존하고 싶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쪼금 무섭다.
어제 의사샘한테 부정적인 기억 떠올리면서 운다고 했는데 그러자 그게 어떤 기억이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자세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자꾸 물어보니까 내 구질구질한 개인사를 오픈하고 말았다. 하.....물론 눈물 콧물도 흘렸다. 버스타고 집에 오면서도 감정이 정리가 안되고 오히려 더 서러워져서 혼자 찔끔찔끔 울었다. 그래도 다행인게 모자를 아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사람들은 잘 안 보였을 것이다. 근데 이제 좀 그만 울고 싶다. 울면 너무 힘들엌ㅋ큐ㅠㅠㅠ
의사 선생님 엄청 다정하신데 음 이게 좀 좋으면서도 싫다. 말 안 끊고 되게 잘 들어주시는데 이러다가 의사선생님한테 의존하게 될 까봐 무섭다. 세상에 의존할 사람이 없어서 생판 남한테 의존을 하다니. 어쨌든 ‘단, 하나의 사랑’이라고 천사 나오는 판타지 드라마 있는데 거기서 신혜선이 ‘다정한 거 싫어. 기대게 되니까. 약하게 만드니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봤다. 처음에 그거 보고 속으로 ‘와 지금이 어떤 시댄데 너무 오글거리네. 여주인공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진짜.’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는게 황당했다. 병원을 또 바꿔야 하나? 근데 병원 바꿨다가 새로운 의사샘이 냉정해서 나한테 비수 꽂을까봐 그것도 걱정이다. 냉정한 것도 문제고 다정한 것도 문제라니 증말...결국 문제는 나 자신인가보다. 버텨야 하는데 자꾸 고꾸라져서 큰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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