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문
맨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던 것처럼 그저께도 나는 새로운 의사 앞에서 울었다. 지금은 그걸 후회 중이고. 사실 요즘 좀 괜찮다고 느끼고 있어서 울지 않을 줄 알았다. 물론 계속 누워서 스마트폰만 보고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끼니를 그럭저럭 잘 챙겨먹고 잠도 잘 잔다. 어쨌든 병원에 가기 전에 절대 안 울어야지 다짐하고 갔다. 그런데 이놈의 눈물샘한테 갑자기 자유의지라도 생겨버렸는지 울지 않으려는 내 부단한 노력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내 증상과 기분에 대해 말하자 의사선생님은 위로를 했고 마지막엔 ‘그러면 헬스피온을 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은 이제 진료가 끝났으니 나가보세요 라는 뜻이다. 나는 그냥 조금 더 말하고 싶어서 내 증상을 더 얘기했고 의사 선생님은 지금 많이 힘드시군요 라고 했다. 그렇게 진료를 받고 약까지 탔다. 이상하게 공허했다. 물론 선생님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사람한테 기대려는 내가 잘못된 거지. 의사 선생님은 그냥 증상을 듣고 약을 처방해주는 사람이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갈 때마다 허무감을 느끼는 내가 정말 진절머리난다. 어떤 사람이 댓글로 그랬다. 병원 가고 약을 처방 받는 건 결국 돈을 내고 위안을 사는 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26000원 짜리 위안을 산 셈이다. 부끄러움과 허무감은 덤처럼 따라왔고.
질병코드는 F432.. 적응장애였다. 저번에 다녔던 병원에서는 중한 우울증이라고 했었는데 그새 병이 바뀔 수 있는건가? 모르겠다. 다른 병처럼 수치로 확인할 수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나는 항상 혼란스럽다. 어떤 날은 좋았다가 어떤 날은 한없이 가라앉고. 주기도 있어서 몇 날 며칠을 누워만 있다가 조금 기운을 차려서 나갈 때도 있다. 이건 치료에도 영향을 미쳐서 많이 무기력할 때에는 병원에 가야지 하면서도 못간다. 치료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기도 한다. 될 대로 되라 그냥 다 안 할래. 이런 식으로 병원 치료를 미룬다. 새로운 병원에 가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예전 병원에 다니다가 한참을 안 갔고 저번 달에 겨우 한 번 갔는데 이번에 다시 가자니 선생님한테 괜히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새로운 병원에 간 건데 기분만 더 다운되고 말았다. 그래도 약은 복용하고 있다. 음 그런데 어제랑 오늘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고 억울한 심정이 드는 걸 보니 약효가 아직 나지 않고 있나보다. 저번에 브린텔릭스 먹었을 땐 거의 먹자마자 눈물이 싹 말라서 좋았는데. 얘는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가족들이 있는데도 자꾸 나에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가 없으니까 의사에게 말하고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 그게 아주 쪼금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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