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피해의식, 징징거림, 우울, 속물적임, 오지게 부정적임, 인성 꽈배기 주의
오늘 연예인 커플의 이혼이 화제였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이혼 빨리 했네 싶었다.
할머니도 뉴스를 보셨는지 그 이야기를 하셨다. 연예인은 잘 모르셔서 그냥 ‘요즘 사람들은 이혼이 쉬워. 서로 참고 살 줄도 알아야지’ 라고 하셨다. 사실 그냥 듣고 흘려버리면 되는 말이다. 평소엔 그렇게 한다. 근데 오늘은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그래서 ‘왜요? 돈도 있겠다 뭐하러 참고 살아요. 전 참고 못살아요.’ 라고 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너는 뭔가가 잘못됐다며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라고 하셨다. 할머니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냥 짜증이 났을 뿐이다.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다. 많이 어려웠을 땐 엄마가 하는 부업도 옆에서 도운 적 있다. 초등학교 때인데 아직도 기억난다. 인조 속눈썹을 케이스에 포장하고 머리 방울에 솜뭉치 넣고. 하나에 5원이었나? 하여튼 하나 하면 돈을 쥐꼬리만큼 주더라 어휴. 어쨌든 그 후로도 계속 넉넉하지 않게 살았다. 살 집은 그래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집도 날렸다. 불행은 연거푸 찾아온다는 걸 그 때 느꼈다. 친척집에서 같이 살 수 있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월세까지 내야했으면 우리 가족은 정말 끝장 났을 테니까. 그래도 학원비 보험료 정도는 겨우 낼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니까 버는 족족 저축 없이 식비, 학원비, 보험료, 병원비로 다 나가는 식이었다. 물론 친척의 금전적인 도움도 종종 받았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면 적어도 우리는 학원비도 낼 수 있었고 치킨 피자도 종종 사먹을 수 있었으니까. 이마저도 불가능한 가정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어머니도 항상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다며 힘내서 살아야한다고 하셨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땐 공부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 수업료는 한 번도 안 내고 다녔다. 근데 내 인생이 잘 안 풀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삐뚤어졌다. 돈 때문에 속상했던 일이 자꾸 생각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예를 들어 우리집 형편에 외국어 고등학교 입학은 힘들었다. 그래서 공부하기도 전에 엄마한테 말했다. ‘나는 외고 가서 공부 많이 하는게 싫으니 안 갈래요. 경쟁도 치열할 것 같아요. 일반고 갈래요.’ 라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당시에는 별로 안 속상했다. 그냥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이번에 사촌 동생 고등학교 입학 때문에 어른들 하시는 얘기를 듣게 되면서 음 그냥 좀 화가 나더라.
사촌 동생은 일본에 사는데 공부를 잘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고등학교 입시가 있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 때 외고에 시험보고 들어가던 것과 비슷한 듯? 어쨌든 사촌동생이 굉장히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걸 들었다. 치바현에서 1등하는 고등학교라던가? 당연히 조부모님은 기뻐하셨다. 지하철 타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다고 하니 너무 먼 것 아니냐며 걱정까지 하시더라. 그걸 보면서 삼촌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나를 외고에 보내야 할지 말지 때문에 고민이라고 조부모님한테 말했다고 한다. 보내고는 싶은데 돈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그랬더니 조부모님은 ‘형편에 맞게 살아야지.’ 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어려운데 뭘 어쩌겠니 보내지 말아라 라는 뜻이었다. 사촌동생의 소위 명문 고등학교 입학에 대한 반응이랑 너무 비교가 되니까 빈정 상하더라. 나도 버스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 다녔는데 그 때는 아무 말씀 안 하셨는데... 나 때는 형편에 맞게 살라고 했으면서...하여튼 온갖 생각이 다 나면서 화가 났다. 일본 고등학교 수업료가 얼마나 비싼지 잘 알지도 못하지만 어찌됐건 사촌동생네가 돈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보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화가 나더라. 그리고 하나 더! 사촌동생은 내 뇌피셜이지만 쯔위 닮았다. 와 인생 인간적으로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 난 신이 있으면 따지고 싶다. 밸런스 패치 좀 해주시지 그랬느냐고.
하여튼 그래서 오늘 할머니 말씀에 가시를 세우고 반응한 것이다. 돈 있으면 어지간한 건 다 되는 세상이라고요. 할머니가 가끔 부잣집은 안 화목하고 가난한 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는 식의 뉘앙스로 말씀하시는데 난 그럴 때마다 반박하고 싶다. 여기 그 반례가 있다고요! 돈 있으면 화목함도 어느 정도 살 수 있거든요? 저는 안 풍족해서 불행했는데요? 할머니는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집 안 화목해요. 저는 항우울제도 먹는데 모르시죠?
8월에 사촌동생네 가족이 들어오는데 늘 그랬듯 내가 살고 있는 조부모님댁에서 일주일 정도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잠시 부모님댁에 가있을까를 생각 중이다. 사촌동생네 가족 너무 완벽해서 보고 있으면 박탈감 든다. 2년 전에 왔을 때랑 이번에 올 때랑 내 신분이 그대로 취준생+백수 수험생인게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기도 하다.
와 쓰고 보니 내 인성 비비 꼬였네. 스크류바인줄. 이런 얘긴 부모님한테 못한다. 하면 부모님 마음에 대못 박는거니까. 그래서 혼자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 가열차게 돌리고 열받아 한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피해의식 가득하고 해봤자 나 자신이나 갉아먹는 생각이란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계속 드는 걸 어떡해. 인생이 잘 안 풀리니까 어릴 때 받은 온갖 상처들이 머리를 헤집고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결국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더라.
그동안 약 먹으면서 좀 가라앉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감정이 요동쳤다. 오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이게 무슨 난리냐 진짜. 지금은 삼촌한테 지원 받는 것도 있고 우리집 자체는 예전보다는 괜찮게 산다. 나도 얼마든지 과외 , 알바해서 돈 벌 수 있고. 근데 예전에 너무 오래 힘들었어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돈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잣 같은 세상. 그리고 이걸 버틸만큼 강하지 못한 내 멘탈. 유전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 모를 짜증나는 병. 푹푹 찌는 날씨. 오늘은 모든게 엉망인 것 같다. 그래서 온갖 분노를 담아서 썼다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앜!!!!!그래도 쓰고 나니 좀 낫다. 딱히 위로를 받으려고 쓴건 아니다. 왜냐면 다들 이 정도 고통은 가지고 살테니까. 그냥 답답해서 뭐라도 쓰고 싶었다ㅇㅇ. 아효 샤워나 하고 생수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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